지난활동

선주민 이주민 어울려 살게마씸, 똘같이 어멍같이 2016

제주도 이주 바람이 일면서 마을마다 육지에서 이주해온 인구가 많게는 절반에 이르는 경우도 생기고 있다. 언어, 문화, 세대의 차이는 간혹 오해와 불신을 낳기도 한다. 모르기 때문에 더 그렇다. 알고 보면, 이해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선주민 이주민이 이해하고 관계맺는 것으로 마을의 미래를 밝혀보자.
4.3사건에 조천을 내려갔는데, 김녕지서에 강 증명을 받아야 어디 뎅겨. 조천장에서 콩 몇 대를 사가지고, 그것을 성산으로 지언강 좁쏠로 바꾸고 모멀로도 바꾸고, 내일 아버지 제사니까 곤쏠 한되도 바꾸고, 또 그걸 지어서 조천꼬지 걸었어. 돈이 잇어시냐. 촘 기가 맥혀. 걸어오젠 허는디 김녕오니까 해가 떨어져부는거라. 함덕 모래판에는 군인이 잔뜩 주둔해가지고 사람을 팡팡 죽일 때라 그때가….
 
살아보지 않은 시절, 짐작하기도 어려운 마음을 헤아리며 부순아(92세) 삼춘의 이야기를 듣는다. 모르는 말도 더러 있지만 다들 제주살이 몇 년 보내는 사이 귀가 조금 트여 알아들을 만하다. 초겨울 어둑한 저녁에 할머니 할아버지 앞에 둘러앉은 이들은 선흘에 정착한 이주민들이다. 자연 속에서 아이들 자라게 하고 싶어 온 젊은 부부도 있고, 농사짓는 사람도 있고, 카페하는 사람, 식당하는 사람도 있고, 화가도 있다.
선흘1리는 지난 10월부터 선주민 이주민 관계맺기 프로그램 ‘똘같이 어멍같이’를 진행하고 있다. 어르신들의 자녀들은 도시에, 육지에 나가있고, 젊은 이주민들의 부모님 또한 육지에 계시니, 마을에 가까이 사는 우리가 서로의 똘이 되고, 어멍이 되어 서로를 돌보며 살아가자는 것이다. “늙은이 이야기 들어줭 고맙다. 고맙다.” 부순아 할머니의 이야기에 박수가 울린다.
 
천천히 스미듯이 다가서는 관계 만들기
사람 사이의 관계는 조심스러운 것이어서, 바쁘게 하기보다는 천천히 스미듯이 만들어가고자 했다. 누구나 이런 관계를 원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어르신들과 이주민들의 뜻을 묻고 의견을 들어 한 걸음씩.먼저 이주민들을 위한 지역과 마을 이해 교육시간을 가졌다. ‘오래된 미래 제주 문화’에 대한 제주대학교 윤용택 교수님의 이야기는 이주민들의 무릎을 치게 만들었다. 제주민들의 인사법, 궨당의 역사적 맥락, 신구간과 민간 신앙, 생태적 순환의 돗통시 등 표면적으로 알았던 이야기의 속을 열어 보여주니, 다들 “아… 그래서 그런 거구나….”를 연발했다. 사소한 말 한 마디, 무심코 한 행동이 오해를 낳아 마음의 문을 쾅 닫아버리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모르니 오해가 된다. 알고 나면 그럴 일이 아닌 것이다.한 걸음 더 들어가 선흘1리가 습지보호지역, 람사르습지로 지정된 이후 지난 6년 동안 기울여온 노력을 선흘1리생태관광추진협의체 김호선 기획팀장이 생생하게 들려주었다. 김호선 팀장은 선흘에서 나고 자란 젊은 일꾼이다. 습지가 무엇인지, 생태가 무엇인지 무관심하던 마을에서 이제는 100명이 넘는 주민들이 한자리에 모여 마을의 중요한 의제를 평등하게 토론하고 결정하는 마을이 되기까지의 이야기에서 마을에 대한 애정과 주민들에 대한 자부심을 흠뻑 느낄 수 있었다.
이렇게 멋진 삼춘, 이렇게 예쁜 젊은이가 옆집에
부순아 삼춘에 이어 마을의 음유시인 고병문(86세) 삼춘의 시를 이주민이 낭독하고 시에 얽힌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이주민이라고 나누지 말고 그냥 젊은이라고 합시다.” 모두 한 마을에 살게 되었는데, 그렇게 다른 이름을 붙일 필요가 없지 않느냐는 말씀이다. 이야기는 노래로 이어졌다. 사람이 모였는데 노래가 빠질 수 있나. 전국민요대회에서 두 번이나 대상을 받으신 허계생(64세) 삼춘이 장구를 잡고 ‘오돌또기’를 딱 한번 부르시고는 “알겠지? 불러보자.” 이러니 웃음이 터진다. 이주민들은 악보도 없이 가사만 써진 제주 민요의 그 오묘한 음을 20분 만에 용케 익혔다. 즉석에서 노래자랑이 열렸다. 대상을 거머쥔 부부는 양은냄비를 상으로 받고 그렇게 기뻐할 수가 없었다. 그동안 옆집에 이렇게 멋진 소리꾼이 있는 줄 몰랐고, 옆집에 이렇게 예쁜 젊은이들이 사는 줄 몰랐다. 카페 하는 부부가 구워온 초콜릿 케익을 나눠먹고, 어르신들이 쥐어주는 떡을 넙죽넙죽 받으며 그렇게 밤이 익어갔다.
 
– <제민일보> 기고 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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