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녀와 바다

바다밭의 농부들 : 해녀

임형묵 제공

 

제주도 갯가 사람들은 바다에 이름을 붙였다. 사람은 소중한 것에 이름을 붙인다.

땅에서 가까운 바다부터 웃밧-중간밧-알밧, 갯바닥의 성상과 지형에 따라 빌레왓, 머흘팟, 자갈밧, 모살밧, 조작지밧,

중요한 해산물이나 해초에 따라 해ᄉᆞᆷ밧, 톨밧, ᄆᆞᆷ바당, 고지기왓 같은 이름을 붙여 불렀다.

바다와 뭍을 오가며 물질과 밭농사를 겸해야 살아갈 수 있었던 해녀들에게는 바다도 밭(밧, 왓)이었다.

일제강점기에 비료가 보급되기 전까지, 바다는 척박한 제주 화산토에서도 밭을 일구어 먹고살 수 있도록 

거름을 내주었다. 바닷속의 가장 큰 보물은 모자반(몸)과 듬북 같은 바다의 대형 해조류들이었다.

봄가을로 수 미터씩 자란 해조류들을 건져 밭에 깔면 박토에 윤기가 돌았다.

 

바다밭의 이름

바다밭 속에는 길이 없고 시야가 좁은 데다 수시로 물이 바뀌고 바람이 바뀌니,

해녀들은 지형지물에도 알뜰히 이름을 붙여 바다밭을 찾아갔다.

바닷속 돌동산(암초)은 위치를 가늠하기 좋았다. 이 돌동산을 좀녀들은 ‘여’라고 했다.

게다가 ‘여’의 바위틈은 소라와 전복이 좋아하는 곳이니 항상 여를 살펴야 했다.

갯마을마다 바다밭 이름 가운데 ‘여’의 이름이 가장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고동이 많아서 고동여, 오분자기가 많아서 오분작여, 할머니가 물질하다 쉰다는 할망여,

방아 같이 생긴 방앗여, 쟁반 같이 둥근 쟁반여, 가마우지가 많아 오다리여, 길어서 진여, 가늘어서 고는여,

동쪽으로 길게 뻗어 똥내민여, 영장(시체)의 다리가 걸렸던 다리걸린여,

어장을 팔아 공동 자금을 마련해 오십원짜리여, 개 머리 비슷해 개데맹이여, 바다 쪽으로 뻗은 코지여….

여의 이름에 바다 생명의 이름이 붙고, 모양을 닮은 일상의 도구가 나오고,

해녀들의 삶이 서리고, 마을의 역사가 걸리기도 했다.

 

조물고, 트고, 메고, 쏘고

바다가 귀한 것을 내준다고 해서 거져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

해녀들은 (목)숨을 걸고 그 밭으로 허우쳐(두 팔을 휘져어) 들어가야 했다.

아무 때나 가고 싶다고 갈 수 있는 밭도 아니었다. 물때에 맞춰, 숨을 멈추고,

한 번 숨에 손에 쥘 수 있는 만큼만 건져 올릴 수 있었다. 정직한 노동이었다.

물질하는 노동에도 이름이 붙었다.

미역이나 감태 같은 해초를 따서 건지는 일은 ‘조문다’,

전복이나 군벗처럼 바위에 딱 붙은 것을 빗창으로 떼어내는 일은 ‘튼다’,

해초를 종게호미로 베어 따는 일은 ‘멘다’, 물고기를 작살로 찔러 잡는 일은 ‘쏜다’고 했다.

좀녀들의 바다밭 노동은 ‘조물고, 트고, 메고, 쏘아’ 이루어졌다.

물질은 물때를 꿰뚫고 있어야 하고, 조류의 방향과 바람의 방향을 읽으며 순응해야 했고,

바다밭을 땅밭 보듯 환히 그리고 있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위험한 노동이었다.

물질에 열성을 갖고 열심을 다해야 했지만 욕심을 내지 않아야 위태롭지 않았다.

그것이 자연과 더불어, 자연에 기대어 사는 지혜였다.

댓글 남기기